퇴사 직후의 공백기와 마음 정리: 해방감과 불안 사이에서 내가 붙잡은 것들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조용한 거실과 커피, 공백기를 정리하는 시간을 상징하는 이미지

이 글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퇴사 다음 날,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침대에서 몸을 굴리는 동작 하나에도 낯선 여유가 묻었다. ‘출근’이라는 단어가 사라지니, 하루의 표정이 바뀌었다. 해방감은 생각보다 소리가 컸다. 커피를 내리며 창밖을 보는데, 마음속에서 오래된 소음이 하나씩 꺼졌다. 그 순간만 놓고 보면 퇴사는 분명 잘한 선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다른 감정이 문틈으로 들어왔다. ‘이제 뭐하지?’라는 질문이었다. 계획이 없는 자유는 금방 불안으로 변한다. 통장 잔액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고, 연락처 목록을 스크롤 내리다 멈추는 시간이 길어졌다. ‘다시 뛰어들 수 있을까?’보다 ‘어디로 뛰어들지?’가 더 어려운 문제였다. 후련함은 결정의 순간에 오고, 불안은 결정 이후에 온다. 그래서 공백기는 ‘잘 쉰다’가 아니라 ‘잘 버틴다’가 과제가 된다.

1. 속도를 일부러 늦추는 연습

나는 무언가를 빨리 채우는 대신, 시간을 천천히 비우기로 했다. 첫째 날은 휴대폰에서 업무 관련 앱을 전부 로그아웃했다. 둘째 날은 오전에만 메신저를 열고, 오후엔 아예 꺼 두었다. 셋째 날은 카페에 앉아 30분 동안 종이 공책에 손으로만 글을 썼다. 이 단순한 규칙들이 생각보다 큰 효과를 냈다. 머릿속이 잠잠해지면, 다음 선택을 향한 문장이 또렷해진다.

2. 하루를 세 칸으로 나누기

공백기의 가장 큰 위험은 하루가 한 덩어리로 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루를 ‘정리–몸–기록’의 세 칸으로 쪼갰다.

  • 정리 30분: 책상 위에서 불필요한 탭, 메모, 파일을 치운다. 버리는 동안 마음의 표면이 매끈해진다.
  • 몸 40분: 휴대폰 없이 걷는다. 걷는 동안 떠오르는 생각은 붙잡지 않고 흘려보낸다.
  • 기록 20분: 오늘 한 일과 감정을 짧게 적는다. ‘잘한 1가지’만 고르면 된다.

이 루틴은 취업 준비에도 도움이 되었다. 스스로를 관리한다는 감각이 돌아오면서, 이력서를 고치는 일도 덜 버거워졌다. 작은 성취가 다음 행동을 끌고 왔다.

3. 사람 관계를 ‘양보다 질’로 전환

퇴사 직후에는 연락을 넓게 뿌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했다.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 한두 명과만 깊게 대화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휴대폰을 뒤집어두고, 상대의 문장을 한 박자 늦춰 받아 적었다. 그 집중이 내 표정을 바꿨고, 대화는 정보가 아니라 방향을 남겼다. “너는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어”라는 말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몸에 붙었다.

4. 다시 취업할 수 있다는 확신을 재구성

‘자신 있다’는 문장은 근거가 있어야 오래 간다. 나는 내 이력에서 숫자를 뽑아 메모했다. 프로젝트 기간, 매출 혹은 비용 절감 수치, 재현 가능한 프로세스. 이 세 가지를 항목별로 정리하니, 막연한 자신감이 ‘설명 가능한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면접을 가정하고 “내가 팀에 주는 가치는 무엇인가?”를 세 문장으로 요약했다. 그 문장을 하루에 한 번 소리 내어 읽었다. 자기소개서보다 먼저, 나에게 납득을 주는 과정이었다.


카페에서 손으로 노트를 작성하며 마음을 정리하는 모습


5. 정보 과식 대신, 실행 가능한 한 줄

퇴사 후에는 정보가 너무 쉽게 손에 잡힌다. 하지만 많이 읽을수록 더 불안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화면을 덮고 한 줄만 남겼다. ‘오늘 밤 열 시 이전에 할 일 1가지.’ 이 기준은 기사 수십 개보다 내일의 나를 덜 흔들었다. 실행 가능한 한 줄이 쌓이면, 공백기는 ‘비어 있음’이 아니라 ‘비워 둠’이 된다.

6. 공백기를 공백으로 남기지 않기

나는 지금도 약간의 불안을 느낀다. 하지만 그 불안은 예열 같은 것이다. 다시 달리기 직전에 엔진 소리가 커지는 것처럼. 확실한 건,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확신을 증명하는 방법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반복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다음 글에서는 이 공백기 동안 내가 실제로 시도한 작은 수익 실험 3가지를 기록하려 한다. 잘된 것도, 어설펐던 것도 모두 적겠다. 공백기를 지나고 있는 누군가에게 ‘오늘 한 줄’의 실행이 전해지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