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하지 않은 하루가 나를 살렸다
퇴사 후 가장 불안했던 시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들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하지 않는 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는 흐름 속에서 하루는 자동으로 소진되었다. 하지만 퇴사 후에는 하루가 텅 비어 보였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내가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쉬는 날에도 억지로 글을 쓰고, 억지로 영상을 만들고, 억지로 계획을 세우며 나를 몰아붙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의 나는 쉬지 못해서가 아니라 ‘쉬는 걸 두려워해서’ 더 지쳐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았던 마음
하루라도 멈추면 모든 흐름에서 탈락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블로그도, 유튜브도, 삶도 모두 속도전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오늘도 글을 올리고, 누군가는 오늘도 영상을 올릴 텐데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손이 떨리듯 키보드를 두드렸고, 완성도보다 ‘했다는 사실’에 집착했다. 그 결과는 피로였다. 머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밤에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쉬지 않았는데도 쉬지 않은 것처럼 더 피곤해지는 이상한 상태가 이어졌다.
완전히 멈춰버린 하루의 시작
그날은 의도한 휴식이 아니었다. 몸이 먼저 말을 걸어온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글을 쓰겠다는 의지도, 영상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불안 대신 무기력이 전체를 덮고 있었다. 나는 그날 하루 동안 노트북도 켜지 않았고, 메모장도 열지 않았고, 계획표도 보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걷고, 조용히 밥을 먹고, 아무 목적 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처음엔 이 시간이 몹시 불안했다. ‘이러다 완전히 무너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시간이 나를 다시 숨 쉬게 했다
그런데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오후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숨이 깊어졌다. 늘 얕게만 쉬던 숨이 그날은 유난히 길어졌다. 머릿속에서 쉼 없이 울리던 잡음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해야 할 일 대신, 느껴야 할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그동안 나는 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나를 혹사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그 하루가, 그동안 눌러두었던 피로를 바닥까지 끌어올려 조용히 풀어주는 시간이 되어주고 있었다.
쉬는 날이 있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단순한 진실
그 다음 날, 신기하게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억지로 무엇을 하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글이 떠올랐고,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전날 그대로 몰아붙였다면 다시 무거웠을지도 모를 하루가, 그날은 유독 가볍게 시작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날은 ‘공백’이 아니라 ‘다음 움직임을 위한 준비 구간’이라는 것을. 쉬는 날은 멈춤이 아니라, 방향을 다시 맞추는 미세 조정의 시간이라는 것을.
이제는 ‘쉬는 날’도 내 루틴의 일부가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쉬는 날을 죄책감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루나 이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날을 의도적으로 비워두기 시작했다. 그날에는 성과도, 계획도, 기록도 내려놓는다. 대신 몸이 느끼는 피로와 마음이 보내는 신호에만 귀를 기울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비운 날들이 쌓이자 글은 더 깊어졌고, 생각은 더 또렷해졌고, 일상은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계속해야 한다’는 강박 대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여유가 생겼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하루가 나를 살렸다
돌이켜보면, 그날은 아무 성과도 없었다. 수익도 없었고, 조회수도 늘지 않았고, 앞으로의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도 계속 글을 쓰고 있다. 쉼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오래전에 지쳐 멈췄을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하루는 나를 게으르게 만든 날이 아니라, 나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든 날이었다. 이제 나는 안다. 계속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때때로 용기 있게 멈출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이 글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