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다시 배우는 삶의 속도: 빨라야 할 일과 천천히 가도 되는 일

퇴사 후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시간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속도가 곧 성과였고, 속도를 내려놓는 순간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이 따라왔다. 하지만 퇴사 후에는 속도를 내가 정해야 했다. 누군가가 정해주는 마감도 없고, 눈앞에서 움직이는 팀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내 속도가 어딘가로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빠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과 천천히 해도 되는 일들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나는 그 사이에서 여러 번 흔들렸다. 그러다 어느 날, 이 둘을 구분하는 능력이야말로 퇴사 후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역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Close-up of a notebook listing fast and slow tasks


빠른 속도가 필요한 일은 따로 있다

퇴사 후에도 여전히 빠른 결정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특히 감정 정리나 우선순위 결정 같은 영역은 머뭇거리면 하루가 무너지고, 무너지면 며칠이 흐트러진다. 나는 퇴사 직후 큰 불안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 많았다. 그때 배운 건 하나였다. 불안이 커지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 생각이 너무 복잡해지기 전에 정리해두어야 한다는 것. 이건 빠른 속도가 필요한 영역이었다. 감정 관리, 일정 정리, 루틴의 기초 설정 같은 일들은 늦출수록 머리가 혼란스러워지고, 실행력도 떨어졌다. 퇴사 후 초기에 내가 가장 빨리 배운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마음의 속도는 늦추면 안 된다”는 것. 감정을 제자리에 두는 일은 빠르게 해야 하루가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을 바꾸는 일은 대부분 ‘천천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반대로, 천천히 가야 제 의미를 갖는 일들도 있었다. 블로그를 쓰는 일,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일,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재설계하는 과정은 모두 느리게 쌓아야 했다. 이런 일들은 애쓰지 않는 순간에도 조금씩 자라지만 서두르는 순간 금세 무너지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글을 5개만 써도 검색이 갑자기 터질 줄 알았다. 유튜브 영상도 3편만 올리면 구독자가 늘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알게 되었다. 블로그와 유튜브는 ‘성과의 속도’가 아니라 ‘누적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을. 조금씩 쌓인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천천히 가는 속도가 하나도 답답하지 않았다. 늦어 보이는 그 시간이 사실은 가장 빠른 길이었다.

빠른 것과 느린 것, 그 경계를 알게 되는 순간

내가 퇴사 후 혼란스러웠던 이유는 이 두 가지 속도가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빨리 해야 하는 것처럼 느꼈고, 동시에 모든 일을 천천히 해야 할 것처럼 보였던 시기였다.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빨라야 하는 일’은 마음을 정리하는 일, 방향을 결정하는 일, 스스로를 붙잡는 일이었다. ‘천천히 가야 하는 일’은 결과를 만드는 일, 내가 원하는 미래를 준비하는 일들이었다. 이 둘을 구분하는 순간 삶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감정과 일정부터 정리하고, 그 다음 천천히 블로그 글이나 영상 작업으로 넘어간다. 이 작은 흐름이 내 하루를 단단하게 지탱해준다.


A person reflecting on the pace of life by a sunlit window


삶의 속도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

퇴사 전에는 회사가 속도를 정했다. 프로젝트의 흐름, 회의 시간, 보고 일정, 연말 목표 같은 것들이 나의 하루를 끊임없이 끌고 갔다. 퇴사 후에는 모든 속도를 내가 정해야 했다. 처음엔 너무 자유로워서 불안했고, 너무 느려서 나태해진 것 같았고, 너무 빠르면 금방 지쳤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삶의 속도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은 부담이 아니라 기회라는 것을. 내 마음을 망치지 않는 범위에서 꾸준함을 유지하고, 내 삶을 망치지 않는 범위에서 속도를 조절하는 것. 이것이 지금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이었다.

결국, 속도를 조절하는 힘이 꾸준함을 만든다

내가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빠르게 해결하려고 하면 지치고, 모든 일을 느리게 하려고 하면 정체된다. 빠르게 해야 할 일은 바로 잡아주고, 느리게 가야 할 일은 충분한 시간을 주면서 하루의 균형을 잡는 것. 이것이 꾸준함의 근본 구조였다. 퇴사 후 다시 배우는 삶의 속도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남이 정한 속도에 맞추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속도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흔들리지 않는 리듬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글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