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가장 먼저 무너진 건 ‘수입’이 아니라 ‘자존감’이었다
퇴사를 결심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건 돈이었다. 월급이 끊기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통장 잔액과 카드 결제일을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당연히 가장 큰 걱정은 수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회사를 떠나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예상과 전혀 다른 부분이 먼저 무너지기 시작했다. 생활비는 아직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라는 질문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내 모습이었다. 수입보다 먼저 떨어진 건 숫자가 아니라, 나를 향한 믿음이었다.
직함이 사라지자 나도 함께 사라진 느낌
회사에 다닐 때 나는 명함 한 장으로 소개가 가능했다. 직급, 부서, 회사 이름만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어느 정도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회의에서 의견을 내도, 거래처와 통화를 해도, 뒤에 회사라는 배경이 있었다. 퇴사 후 그 배경이 사라지자, 내 말의 무게도 함께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로 만나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려고 하면 말문이 막혔다. “전에 어디 다니셨어요?”라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 일을 하세요?”라는 말 앞에서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자꾸 쌓이면서, 나는 내가 점점 작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돈보다 더 무서웠던 건 ‘쓸모없는 사람’이 된 듯한 감각
수입이 줄어드는 건 숫자로 확인된다. 그래서 오히려 대응이 가능하다. 지출을 줄이고, 예산을 다시 짜고, 기간을 계산하면 어느 정도 그림이 나온다. 하지만 자존감이 무너지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오늘 나를 기다리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을 때, 메일함을 열어도 긴급한 메시지가 없을 때, 휴대폰이 조용한 하루가 이어질 때 나는 마치 세상에서 필요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저 “나를 찾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자존감을 회복하려면 ‘성과’가 아니라 ‘기여’를 봐야 했다
한동안 나는 예전과 같은 성과를 내야 다시 자존감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블로그 방문자가 확 늘어나거나, 유튜브 조회수가 크게 튀거나, 새로운 수익이 생기면 마음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빨리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큰 성과 대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기여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글 한 편을 통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짧은 영상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웃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쓸모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증거가 되었다. 자존감은 대단한 업적보다, 사소하지만 꾸준한 기여에서 조금씩 다시 살아났다.
나를 다시 믿게 해준 건 ‘루틴’이었다
퇴사 후 자존감이 무너졌을 때, 나를 다시 붙잡아 준 건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아주 단순한 루틴이었다. 이틀에 한 번 글을 쓰고, 주기적으로 영상을 만들고, 정해둔 시간에 책을 읽거나 산책을 나가는 일처럼 작지만 반복되는 행동들이 하루를 지탱해주었다. 루틴을 지키다 보니 “그래도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감각이 생겼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누구에게 보고하지 않아도, 나와의 약속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작은 자신감을 만들어줬다. 그 자신감이 다시 자존감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어주었다.
이제는 수입보다 자존감을 먼저 챙기기로 했다
물론 돈은 여전히 중요하다. 생활비도 필요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도 수입은 필수다. 하지만 퇴사 이후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나는 한 가지를 분명하게 배우게 되었다. 수입이 조금 줄어도 다시 채울 수 있지만, 무너진 자존감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이제는 어떤 선택을 할 때 “돈이 되느냐”보다 먼저 “이 선택이 나를 더 존중하게 만들까?”를 생각하려고 한다. 나를 믿는 마음이 살아 있어야 어떤 일이든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퇴사 후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이 자존감이었다면, 앞으로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도 결국 자존감이라는 사실을 나는 지금 천천히, 그리고 분명히 배우는 중이다.
이 글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