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25의 게시물 표시

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한 첫 번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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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다가오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계획 이야기로 가득 찬다. 다이어리 매대가 눈에 띄고, SNS에는 목표를 정리한 글들이 하나둘 올라온다. “올해는 꼭 이걸 해보려고요”라는 문장들이 당연한 인사처럼 오간다. 예전의 나는 그 분위기 속에서 빠지지 않고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새 노트를 꺼내 연간 목표를 적고, 분기별로 나누고, 다시 월별 계획으로 쪼갰다. 그렇게 계획을 정리하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아직 아무 것도 이룬 건 없지만, 적어도 ‘준비된 사람’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계획과 현실 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벌어졌다. 예상보다 느리게 가는 날들이 쌓이고, 계획표에 체크하지 못한 칸들이 늘어났다. 그때부터 계획은 나를 돕는 도구가 아니라, 지키지 못한 나를 증명하는 기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번 새해에는 그 반복을 멈추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계획을 세우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계획을 세우는 순간보다 무너지는 순간이 더 선명하게 남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기억하는 건 계획을 세우던 순간의 의욕보다 그 계획이 무너졌을 때의 감정이었다. 처음에는 일정이 조금 밀렸을 뿐인데, 그 밀림이 곧 ‘실패’처럼 느껴졌다. 하루 이틀 어긋난 일정은 금세 죄책감으로 바뀌었고, 그 죄책감은 다시 나를 재촉했다. 결국 계획을 따라잡기 위해 무리하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지쳐버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특히 퇴사 이후에는 이 패턴이 더 선명해졌다. 회사라는 구조 안에서는 계획이 조금 흔들려도 그 틀 안에서 다시 정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혼자가 된 이후에는 계획의 흔들림이 곧 나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졌다. ‘내가 방향을 잘못 잡은 건 아닐까’ ‘아무 준비도 없이 나온 건 아닐까’ 계획이 무너질 때마다 이런 생각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점점 계획...

연말이 되니 더 불안해졌다, 그래도 멈추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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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묘하게 조급해졌다. 달력이 12월을 향해 넘어가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올해는 어땠어?”라는 질문을 꺼낸다. 그 질문은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인사일 수 있지만, 내게는 꽤 묵직하게 들렸다. 퇴사 후의 시간은 분명 의미가 있었는데, 숫자로 보여줄 결과가 많지는 않았다. 블로그 글은 쌓였고, 유튜브도 조금씩 채워졌지만, 연말의 분위기 속에서는 그 모든 과정이 순간적으로 작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연말은 이상하게도 ‘끝’이 아니라 ‘비교의 시즌’처럼 느껴졌다. 연말 불안의 정체는 “뒤처질까 봐”가 아니라 “증명하고 싶어서”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뒤처질까 봐 불안한 줄 알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불안의 중심에는 ‘증명’이 있었다. 퇴사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고, 내가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연말은 그 증명을 요구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 성과를 정리하고, 목표를 회고하고, 내년 계획을 세우며 모두가 ‘결과’로 자신을 설명하려 한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자꾸 흔들렸다. 수입이 아니라 자존감이 먼저 무너졌던 그 시기가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처럼, 또다시 나를 의심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기로 한 이유는 단순했다 불안한 마음이 올라오면 예전의 나는 속도를 올렸다. 더 많이 쓰고, 더 자주 올리고, 더 빨리 결과를 만들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렇게 몰아붙인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 지치고, 다시 멈추고, 그 멈춤에서 죄책감이 커졌다. 그래서 이번 연말에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불안을 없애려 하기보다, 불안한 채로 ‘내 패턴’을 지키기로 했다. 하루에 10분이라도 글감을 정리하고, 이틀에 한 번은 글을 쓰고, 가능한 범위에서 영상 작업도 조금씩 이어가는 것. 큰 성과를 만들지는 못해도,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연말을 지나가고 싶었다. 멈...

퇴사 후 가장 먼저 무너진 건 ‘수입’이 아니라 ‘자존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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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결심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건 돈이었다. 월급이 끊기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통장 잔액과 카드 결제일을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당연히 가장 큰 걱정은 수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회사를 떠나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예상과 전혀 다른 부분이 먼저 무너지기 시작했다. 생활비는 아직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라는 질문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내 모습이었다. 수입보다 먼저 떨어진 건 숫자가 아니라, 나를 향한 믿음이었다. 직함이 사라지자 나도 함께 사라진 느낌 회사에 다닐 때 나는 명함 한 장으로 소개가 가능했다. 직급, 부서, 회사 이름만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어느 정도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회의에서 의견을 내도, 거래처와 통화를 해도, 뒤에 회사라는 배경이 있었다. 퇴사 후 그 배경이 사라지자, 내 말의 무게도 함께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로 만나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려고 하면 말문이 막혔다. “전에 어디 다니셨어요?”라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 일을 하세요?”라는 말 앞에서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자꾸 쌓이면서, 나는 내가 점점 작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돈보다 더 무서웠던 건 ‘쓸모없는 사람’이 된 듯한 감각 수입이 줄어드는 건 숫자로 확인된다. 그래서 오히려 대응이 가능하다. 지출을 줄이고, 예산을 다시 짜고, 기간을 계산하면 어느 정도 그림이 나온다. 하지만 자존감이 무너지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오늘 나를 기다리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을 때, 메일함을 열어도 긴급한 메시지가 없을 때, 휴대폰이 조용한 하루가 이어질 때 나는 마치 세상에서 필요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저 “나를 찾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자존감을 회복하려면 ‘성과’가 아니라 ‘...